프랑스 고사성어 중에는 개와 늑대의 시간(L'heure entre chien et loup) 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해질녘, 저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는 개가 반기러 오는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시간대를 일컽는 말이다. 스포츠에서도 비슷하다. 큰 기대를 가지고 뽑은 선수가 여러가지 이유로 성장하지 못하거나 심한경우 해당 종목을 그만둬 버리는 경우가 있고 별다른 기대가 없던 선수가 기여도가 높은 선수가 되기도 한다. 혹은 둘다의 경우를 모두 가지고 있는 사례도 있다. 


 사실 스포츠에서 어떤 선수가 제대로 성장할지 못할지는 아무리 예측하고 분석해도 추세만 확률적으로 계산할수 있을뿐 정확히 예상할수 없다. 머니볼로 유명한 메이저리그의 빌리 빈도 한해에 7명의 1라운드 지명자를 지명할수 있었을때 성공시킨건 2명에 불과하니 말이다. 


그런면에서 현대건설의 6년차 아웃사이드 히터 고유민은 현대건설 팬들의 개와 늑대의 시간쯤 된다. 6년전에도 레프트 기근에 시달렸던 현대건설은 당시 감독인 故황현주 감독이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았는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배구 덕후들이 예상하던 지명자인 최지유 대신 뽑은 아웃사이드 히터(레프트)이다. 최지유는 기업은행에 지명되었지만 메디컬테스트에 탈락[각주:1]해 바로 실업리그로 갔다. 


신인 시절 고유민은 위트와 유머있는 발언으로 주목받았지만 경기력면에서는 고전을 면하지 못했는데 작전타임때는 "도대체 배구선수가 배구공을 무서워하면 어떻게 하냐?" 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제일 큰 문제는 리시브 불안이었다. 하지만 황 감독은 자신이 지명한 선수를 책임감있게 꾸준히 교체로라도 기용을 했고 더디지만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각주:2] 시즌 종료후 감독이 교체되었고 당시 코치였던 양철호가 감독으로 영전하였다. 


아마도 양철호는 고유민을 탐탁치 않아 했던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때 현대건설에는 김주하(92년생), 정미선(94년생), 김진희(93년생)까지 많은 선배 아웃사이드 히터들이 있어서 사실 굳이 기용할 이유가 없었다. 특히 김주하는 사실상의 리베로로 평가받을만큼 좋은 수비력을 가지고 있었고 정미선도 비슷했다. 물론 타 팀 팬들에게는 반쪽짜리 레프트만 있다고 조롱받기는 하였으나 어차피 기업은행도 당시 반쪽짜리 레프트 둘로서 강팀으로 추앙받고 있었던 만큼 그다지 중요한 비판은 아니였다.


2년차 컵대회 때 고유민은 교체멤버였다가 정미선의 십자인대 부상[각주:3], 충돌로 인한 김연견의 부상으로 리베로로 출장했다. 참 활약이 눈부셨는데 리시브는 불안불안했지만 훌륭한 디그로 리베로의 부재를 최대한 지웠다. 그때 그 컵대회는 우승을 했다. 시즌때는 큰 활약은 없었지만 리시브 성공률은 차츰 차츰 높여나가고 있었다. 양철호 감독은 공격력만 장착된다면 당시 정미선과 김주하가 채워주지 못한 것을 채워줄수 있다고 생각한것 같다. 이듬해의 컵 대회에서는 빠른 팔 스윙으로 경기당 10득점 이상 씩 책임지면서 부상병동이던 팀이 준우승을 했다. 이때의 활약으로 시즌 개막전부터 주전 레프트로 출장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리시브 불안이었는데 고유민은 도통 리시브 면에서는 활로를 찾지 못했다. 한마디로 기복이 너무 심했는데 어떤 때는 남 부럽지 않게 잘 받다가도 어떤때는 저게 선수가 맞나 싶을 정도로 못받기 일쑤 였다. 결국 세 경기 만에 교체선수로 지위가 바뀌었고 베테랑 한유미와 번갈아가며 출전을 했다. 이 부분은 아쉬운 부분인데 감독이 한 달, 5경기 정도만 참아줬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그렇게 됐다. 4년차때 팀은 우승을 했다. 다만 이때 처음으로 선수명단에서 빠질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다. 연습경기 중에 팔목이 부러져 철심을 박았다.


팀 내 입지도 취약하고 팬도 얼마 없는 선수는 보통 경쟁관계에 있는 타 선수 팬들의 표적이 되기 쉬운데 그녀도 예외는 아니였다. 특히 프런트가 인위적인 세대교체를 단행하자 감독이 반발하고 팀 분위기가 엉망이 되었다. 팬들도 예외는 아니였는데 퇴단 당한 몇몇 선수의 일부 팬들이 사이버 상으로 인신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지금그들은 흔적도 없지만 당시에는 꽤나 가열찼다. 인스타 방송만 키면 익명 계정으로 욕을 했고 근거 없는 소문을 자가발전으로 키우곤 했으니까 물론 선수가 잘못한 부분[각주:4]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팀에 헌신한 선수에게 가하기에는 매우 부당한 대우였다.


레전드 급인 한유미, 새로 외부영입 된 황민경의 등장으로 입지는 더욱 쪼그라 들었는데 보통 선수였으면 아마 그만두고 인생 2막을 준비 했을 것이다. 보통 그 정도 입지를 가지고 있는 선수는 그 연차가 쌓이면 실업에 간다. 자유계약은 어렵고 연봉은 좀 깎이거나 비슷하며 여유 시간은 많기에 대학가기에 편하기 때문이다. 가정에서는 장녀이기도 한 그녀는 남다르게 존버를 선택했고 어느새 6년차 팀과 계약 기간을 꽉 채운 중견 선수가 되었다. (앞서 서술한 부상 말고는 별다른 부상이 없었다. 내구력 하나는 좋은 편이라 그래도 차곡차곡 필요한 출장 경기 수는 채웠다. 하루우라라?[각주:5])


6년차 선수는 다음해에 자유계약선수가 되기 때문에 주전선수가 아닌 바에 사실상 전력구상에서 빠진다. 실제로 해당시즌 초반 경기들에서는 출전 자체를 시키지 않았다. 그녀의 몇 안되는 팬들도 이제 얄짤없이 실업가는 구나 단념했지만 팀이 드래프트에서 뽑은 외국인 선수의 수준 이하의 기량, 베테랑 아포짓 히터가 부상으로 이탈 등을 겪고 팀 최다연패 타이기록인 11연패를 기록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팀이 이렇게 전면적으로 붕괴하면서 기회가 다시 한번 찾아왔다.


이도희 감독은 자신이 이끌때 팀 최다연패 기록을 세우는 것 만큼은 막고 싶어했고 후반기 일정이 시작되자 고유민을 시험적으로 몇 세트 기용했다.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는지 과감히 황연주를 빼고 고유민을 윙리베로[각주:6]롤로 선발 투입했다. 이는 현재 대성공을 거두었다. 고유민은 서브에서 황연주와 비슷한 효율을 냈고 리베로 김연견, 레프트 황민경에게 가해지던 과도한 수비부담이 상쇄되면서 팀은 안정화 되었고 새로 들어온 외국인 선수 마야가 자리잡으면서 6승 3패를 기록하며 전반기의 하염없는 추락을 일단 막았다. 그동안 고질적인 약점으로 취급받던 리시브도 효율이 39.5%에 이를 만큼 잘 받고 있다. 13위의 기록이며 레프트 중에서는 7번째의 기록이다. 아슬아슬한 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대로 잘 해나가고 있는 셈이다.


현대건설은 황민경 영입 이전까지 득점력이 좋은 황연주의 존재로서 윙 리베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팀이었다. 문제는 윙 리베로는 선수에게 과도한 수비 부담을 가하기 때문에 부상 등으로 선수생명이 길지 않다.[각주:7] 그렇게에 윙 리베로는 서브 선수가 필수적인데 현재 현대건설에서는 고유민을 수비적으로 받쳐줄 선수가 마땅치 않다. 과거에는 김주하-정미선-고유민이 돌아가면서 봤지만 이제는 혼자 수비를 책임져야하는 것이다. 전임 감독과 현 감독은 베테랑과 외부선수로 '윈나우'를 하다보니 팀을 탄탄하게 만들 3~4년차 선수를 성장시키는데 소홀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팀은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고유민은 자신의 가치에 대해 의심을 갖던 관계자들과 팬들에게 늦었지만 증명해냈다. 선수에게 마땅히 경의의 박수를 보내야 할 것이다.




  1. 본인이 지명을 거부했다는 설도 있음. [본문으로]
  2. 당시 신인 중 출장 세트 2위였다. 1위는 고예림(당시 도로공사, 현 기업은행) [본문으로]
  3. 배구장에서 경험한 제일 큰 트라우마인데 경기 막판 백어택(...)을 시도하다가 착지를 잘못해 무릎의 십자인대가 끊어졌고 선수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나는 그 경기를 직관하고 있었다. 정미선은 이 부상으로 인해 2년후 은퇴한다. [본문으로]
  4. 감독이 교체된 기사가 난 날 인스타 먹방방송을 키는 등. [본문으로]
  5. 일본의 경마의 말. 1등한적은 없지만 1년에 25번 이상의 경주를 소화하는 경이적인 내구성으로 살아남았고 사람들의 보살핌 아래 여생을 보내고 있다. [본문으로]
  6. 윙 공격수지만 수비적인 역할만을 맡는 포지션이다. [본문으로]
  7. 김주하는 허리부상을 달고 살았고 정미선은 무릎인대가 끊어져 은퇴를 했다. [본문으로]
Posted by Doomb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