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 고유민, 2020년 2월 필자와 숙소에서 대화중인 모습. (출처: 현대건설 배구단 유튜브 채널)

 

 7월 31일 처음에 부고소식을 들었을 때 누군가가 머리를 세게 내려친 듯이 멍했습니다. 처음엔 믿지 못했으나 쏟아지는 신문기사와 뉴스, 슬퍼하는 친구들의 SNS를 보고 ‘진짜 현실이구나’ 그제야 느껴졌습니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부정과 슬픔, 미안함과 약간의 원망을 넘어서 이제는 그저 심장이 뛰는 매 순간순간 마다 무겁게 내려앉는 것 같습니다. 하늘도 슬픈지 계속해서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장례식장에 가서 조문을 했습니다. 마음속으로 우리 이렇게 보면 안되는데 하면서 국화 한송이를 놓아두고 왔습니다. 그 옆에 신인 시절 찍어서 선물로 준 사진집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남겨진 분들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었으나 그걸 보고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어 간신히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차려진 음식을 억지로 먹었습니다. 부끄럽게도 결국 우산까지 두고 도망치듯 나왔습니다.

 다음날 당신이 남긴 메모를 보았습니다. 이제 그만 잊혀지길 원한다고 했지만 이번에만은 그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미안합니다. 

 당신은 늘 자신보다는 팀을 우선하고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 헌신적인 선수였습니다. 평소에는 감독의 경기 중 전술적인 변화를 강화시켜주는 교체선수 레프트로 활약했습니다. 이 자리는 맡아야하는 사람이 반드시 팀에 있어야 하지만 경기 중 투입되기에 실력을 온전히 발휘하기가 어렵고 잘해도 티가 안나는 그런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그것도 한 팀에서 그것도 7년 동안이나 활약 했습니다.  

 2년차인 2014년의 컵 대회때 주전 선수 두명이 한꺼번에 부상으로 이탈하는 상황에서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포지션인 리베로로 투입되어 팀을 구해냈습니다. 또한 재작년 시즌에는 팀이 개막전 이후 11연패나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후반기 선발로 다수 출장해 후위 수비를 책임지고 안정화 시켜 팀을 최하위의 치욕에서 벗어나게 했었습니다. 

 다만 팀과 팬들은 늘 어렵고 힘든 그 자리에 당신이 있었기에 당신이 소중한지 몰랐습니다. 팀은 당신을 불신하여 여러 번 같은 포지션의 은퇴선수의 복귀와 외부영입으로 보답했고 당신의 충동적인 실수에 다시 기회를 주지 않고 임의탈퇴처분으로 사실상의 징계를 가했습니다. 팬들은 그녀의 헌신을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자리에 있는 것이라고 욕하고 몰아세우기 바빴습니다. 세상은 당신에게만 너무 가혹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정말 안타깝고 통탄할 노릇입니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당신은 팬에게는 늘 유쾌하고 한없이 친절하며 따뜻한 선수였습니다. 팬이 쑥스러워 하면 먼저 밝은 미소로 인사해주고 경기가 끝나고 피곤할때에도 사인과 사진촬영을 원하는 팬이 있으면 빠지지 않고 모두 해주고 늦게 구단 버스에 타던 사람이었습니다. 

 몇 년전 수원시내 카페에서 열린 선수단 팬미팅에서 이다영 선수와 함께 당신은 곰인형 판매 담당을 했었습니다. 제가 곰인형을 산다고 하자 곰인형에 자기 사인과 이다영 선수 사인까지 한다음 ‘그냥은 못드리고 돈주고도 못사는 한정판을 드린다.’며 익살을 떨며 주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나 유쾌했던 사람이 오랫동안 심적 고통을 느끼다가 멀리 떠나버렸다는 사실이 지금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떠난 당신은 오랜 팬인 저 앞에서는 항상 씩씩하고 늘 선수였고 싶은 사람이었습니다. 아픈 데가 있냐고 걱정하면 씩 웃으며 ‘괜찮다. 금방 낫는다.’ 하고 6개월전 이벤트로 숙소에 찾아갔을 때 5년만에 숙소에 다시 왔다고 하자 “나도 이렇게 오래 버틸줄은 몰랐다”고 하면서 제가 정말 대단하다고 치켜올리니 배시시 웃길래 저도 마음을 놓았습니다. 

 이후 숙소를 나가고 나서 직접 만날수는 없고 해서 잘 지내는지, 혹시 마스크 필요한게 없는지 (당시에 마스크가 전국적으로 품귀 상태였는데 저는 직업관계상 넉넉하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개인 메시지로 보낸적이 있습니다. 자신은 잘 지내고 있으며 오히려 저에게 코로나 조심하라고 당부까지 하길래 제 마음대로 ‘아 마음은 편한 상태구나’ 생각했었습니다. 실제로는 몸과 마음이 상처받아 부셔져 있다는걸 너무 늦게야 알았습니다.

 이는 무언가를 주장하려고 쓴 글이 아닙니다. 뉴스에서는 생전 마지막 인터뷰 영상이 나오며 그저 악플에 마음이 다친 여린 불쌍한 사람으로 소개되지만, 실제로는 당신이 선수로서 얼마나 오랫동안 책임감을 가지고 노력했는지,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 저는 눈으로 직접 봤고 확실하게 알고 있기에 산자의 도리로서 애도의 침묵보다는 다른 이들이 올바르게 기억해주기 바라는 마음이 크기에 쓴 글입니다.   
    
 당신은 베풀기만 하고 떠났습니다. 저는 당신이 반짝반짝 빛날때만 함께했지 정말 힘들때 당신을 위해 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지금도 괴롭습니다. 다시 한번 미안합니다. 도착한 그곳에서는 영원히 편안하고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국내 최대 포털 사이트 네이버는 8월 7일 스포츠 뉴스 부분의 댓글 기능을 잠정적으로 중단하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故 구하라 씨, 故 최진리(설리) 씨의 사망 직후 연예 기사에 대한 댓글을 중단한 이후의 또 다른 사망사건이 나오자 뒤늦게 취한 조치였습니다. 하지만 외국에 기반을 둔 SNS 기업들은 이용자 보호에 대한 미흡함을 개선하지 않고 있습니다. 

* 고인이 7년이나 몸담은 현대건설 배구단은 단체 합숙, 훈련을 하는 팀입니다. 고인이 퇴단전에도 우울증과 수면장애를 앓았음을 인지하였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한 어떠한 사과나 입장발표가 없는 상태입니다.  

'SportingM@ster > 여자배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유민의 죽음과 현대건설 배구단의 책임  (0) 2020.08.30
인삼공사 경기를 본 단상  (0) 2019.02.21
개와 늑대의 시간  (0) 2019.02.15
생일축전  (0) 2019.02.09
"그래서~ 어땠니?"- 리즈 맥마흔  (1) 2016.03.31
Posted by Doombus
,